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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에서 신고전경제학까지 – 자본주의 사상의 형성과 전개

by 브로핏 2025. 8. 29.

19세기 독일의 사회 이론가 막스 베버는 사회과학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자본주의의 본질이 생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교환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베버는 길드에 소속된 장인과 도제의 관계, 혹은 장원의 영주와 농노의 관계처럼 노동 체제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이전의 경제 구조와 비교하면서, 자본주의가 더 높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는 이유를 시장과 교환에서 찾았다. 베버는 1904년에서 1905년 사이 집필한 저서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가 기존의 전통적 경제 활동 양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분석하였다. 그는 근대 자본주의로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합리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신'을 제시하였다. 이 정신이 확산됨에 따라 법률 체계의 정비, 임노동의 자유 확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으며, 특히 노동자의 삶에서 가정과 일터가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따라서 베버는 자본주의의 성립 원인을 생산 수단의 변화에서 찾았던 마르크스와 달리, 정치적·문화적 영역에서 새롭게 등장한 기업가들의 합리적 정신에 두었다. 그는 이러한 정신이 특히 개신교, 그중에서도 칼뱅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베버에게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발전된 경제 체제로 인식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에는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한 그는 현대 사회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관료제나 주식회사의 제도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결과라고 평가하였다. 독일 역사학파의 시각에서 보면,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장을 지향하는 생산 체계로 이해된다. 그들의 논의는 여러 면에서 막스 베버의 관점과 닮아있지만, 시장과 화폐에 대한 인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역사학파는 자본주의의 성립을, 화폐와 신용이 제한적이었던 중세의 전통적 경제 활동이 근대적 금융체계로 전환되는 과정으로 파악하였다. 이 변화는 단순하지 않고 다양한 경로와 단계를 거쳐 나타난 것으로 보았으며, 그 핵심적 동인은 이윤 추구라고 설명하였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독일 역사학파에서 오스트리아학파가 분리되어 나왔다. 그 계기는 멩거가 제시한 한계효용이론이었으며, 이 이론을 토대로 형성된 오스트리아학파는 20세기에 들어 영향력 있는 경제 사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학파를 대표하는 사상가인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끊임없이 일어나는 '창조적 파괴'에서 찾았다. 그는 산업 전반이 성장과 쇠퇴의 과정을 반복하며 경제 전체가 확대된다고 주장하면서, 변화에 소극적인 산업은 결국 도태되는 반면,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산업만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같은 학파에 속한 미제스와 하이에크는 20세기에 대두된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오직 시장 경제만이 복잡한 현대 사회의 경제 구조를 효과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세의 법칙, 즉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명제를 토대로 공급 주도적 경제 정책을 지향하였다. 그들에게 자본주의의 핵심은 생산과 관련된 결정 과정에서 국가의 개입을 배제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데 있었다. 1937년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출간하였다. 그는 이 저서에서 자본주의가 투자 활동이 위축되는 국면에 들어설 경우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케인스는 높은 수준의 실업률이 지속되더라도 자본주의 경제가 세의 법칙이 말하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균형 상태를 유지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하며, 이 법칙에 반대하였다. 또한 대공황과 같은 자본 축소 국면에서는 사람들이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의 소비보다는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선호하게 되고, 이로인해 자본 위축이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해법으로 '일정한 수준의 투자의 사회화'만이 유효하다고 강조하였다. 케이스 경제학은 실업과 디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케인스학파는 불황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로 세금 감면, 국채 발행, 경기 연착률을 위한 공공지출 등 정부의 재정 적자 정책을 제시하였다. 이는 정부가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유도하여 사람들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도록 만드는 방식이었다. 이후 피에로 스라파는 케인스의 사상을 바탕으로 네오 케인스학파를 형성하였다. 스라파는 자본주의를 단순한 생산 체제가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욕구 충족을 매개로 하는 총체적 사회관계로 이해하였다. 그는 자본주의가 높은 이윤 추구를 통해 강한 역동성을 가지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사회·경제적 불안 요소를 내포한다고 보았다. 최근의 경제학 이론 가운데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신고전경제학이다. 이 학파는 사유재산과 소유권의 보전을 중시하며, 정부의 역할은 비교적 중립적인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정부가 직접적으로 경제에 개입하기보다는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을 강조하며, 노동시장의 유연화, 대주주 중심의 기업 운영, 국가의 금융정책보다는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을 권장한다. 신고전경제학의 한 분파인 시카고학파는 자유주의적 시장 질서를 강하게 옹호하며, 통화주의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밀턴 프리드먼은 시장은 외부의 간섭이 없을 경우 본래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고, 경기 침체는 근본적으로 정부의 불필요한 개입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대공황의 원인 역시 투자의 위축이라는 케인스의 해석과 달리, 연방준비제도의 통화 공급 축소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주장은 현재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도 상당 부분 동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날 신고전경제학은 사실상 주류 경제학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학파는 전통적인 노동가치설을 부정하고,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주관적인 것이라고 본다. 특히 한계효용과 한계비용이라는 개념을 통해 가치와 선택을 설명하며, 자본가의 이윤은 소비 성향, 위험 부담, 생산 조직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정치적으로 이러한 사고방식은 흔히 신자유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신자유주의는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여러 국가에서 주요한 정책 결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신고전경제학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또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졌던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