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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by 브로핏 2025. 8. 29.

자본주의는 재화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개인의 자유의사에 반하거나 법률적 근거 없이 침해할 수 없는 사회 구성원의 기본적 권리로 인정하는 사회 체제를 의미한다. 또한 사회주의적 시각에서는 자본가나 기업가 계급이 생산 수단을 보유하며, 그들의 이익 추구를 위하여 제한적으로 생산 활동이 허용되는 경제적·사회적 구조로 규정되기도 한다. 사적 소유권을 인정핟나는 것은 곧 재화의 매매, 이전, 소비, 그리고 이윤 활동의 권한이 개인이게 맡겨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윤 극대화를 인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투자, 분배 등이 주로 시장을 통해 조정된다. 초기의 전통적 자본주의는 모든 경제 운영을 시장에만 의존하는 방식을 강조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힘을 가진 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약육강식 구조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정글 자본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수정 자본주의, 케인스주의, 그리고 독일어권 국가들의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 등은 일정 수준에서 정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하되 사회적 목적을 위해 국가가 일부 개입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고대에도 자본주의적 성격을 띤 조직이 일부 존재하였으며, 중세 후기로 접어들면서 상업 자본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체제를 특징짓는 주요 제도들은 16세기에서 19세기 사이 영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서구 사회에서는 봉건제가 붕괴하면서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사회 체계로 자리 잡게 되었고, 20세기에 들어 세계적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는 전 지구적으로 우세한 경제 체제로 확산되었다. 자본주의는 각국의 정치적·경제적 ·문화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발전해 왔으며, 때로는 사회주의적 요소와 결합하여 혼합 경제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20세기 전반에 걸쳐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주의적 공산주의 경제 체제와 대립 구도를 형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취약점을 은폐하고 이념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본주의' 대신 '자유'라는 용어가 적극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자본주의의 개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와 함께 진화해 왔다. 시장, 재산권, 투자와 같은 자본주의의 구성 요소 또한 사회적·역사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와 작동 방식이 달라져 왔다. 고전 경제학을 대표하는 사상가인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 흄과 같은 초기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은 스미스를 비롯하여 데이비드 리카도, 장 바티스트 세, 존 스튜어트 밀 등 고전 경제학자들의 생산, 분배, 교환에 관한 이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근간을 이루고 있다. 스미스는 원래 도덕철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1776년 '국부론'을 집필하기 이전에 이미 1759년에 도덕철학적 관점을 담은 '도덕감정론'을 저술하였다. 그는 오히려 '도덕감정론'을 '국부론'보다 더 중요한 저작으로 보았으며, 실제로 '국부론' 또한 도덕철학의 기반 위에 쓰여졌다. '국부론'에서 제시된 '보이지 않는 손'이나 자유경제 개념은 시간이 흐르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동시에 원래 의도와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주체들이 도덕을 이윤과 상충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면, 스미스가 구상한 자유시장은 이윤이나 사적 이익 자체를 목적이 아닌 사회적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수단으로 본 것이었다. 즉, 자본주의는 보다 나은 사회, 복지와 풍요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라는 점에서 스미스 철학의 핵심은 도덕철학적 토대 위에 있었다. 현대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은 자본주의의 원형을 스미스의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에서 다시 찾기도 한다.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중상주의적 체제를 비판하며 '자유방임적 질서'를 옹호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흔히 '고전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시장의 기능을 설명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제시했고, 또한 무역의 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절대 우위' 이론을 도입하였다. 이어서 리카도는 1817년 '정치경제학 및 세금의 원리에 대하여' 에서 '비교 우위' 개념을 발전시켜 자유무역의 정당성을 뒷받침하였다. 고전 경제학은 세의 법칙을 토대로 공급 중심의 경제 정책을 주장하였다. 고전 경제학은 자유주의적 신념에 따라 국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자유방임주의를 옹호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국가의 역할을 야간 치안을 담당하는 정도로 한정하는, 이른바 '야경국가' 개념으로 구체화되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비판한 대표적인 사상가로 꼽힌다. 그는 1848년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이후 줄곧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으며, 영국으로 망명한 뒤에는 고전파 경제학을 심층적으로 연구하면서 이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저작 '자본론'을 집필하였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사적 생산관계에 기초하여 생산물이 특정 계급에 의해 소유되고 통제되는 생산양식으로 규정하였다. 그의 역사적 유물론에 따르면 인류 역사 속에 존재했던 여러 생산양식들은 내재적 모순 때문에 스스로 붕괴해 왔으며, 자본주의 역시 이러한 역사적 생산양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를 기준으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양분된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그는 고전 경제학에서 강조하는 자유가 사실상 재산권을 보장하는 자유에 한정되어 있으며, 노동자에게는 '일하지 않으면 굶주릴 자유'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더 나아가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의 '인구론'이 말하는 잉여 인구는 자본주의의 존속을 위해 불가피한 잉여 노동력, 즉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산업예비군일 뿐이라고 지적하였다. 마르크스 경제학이 고전 경제학에 가한 비판은 흔히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결국 국가의 보이는 주먹에 의해 유지된다'라는 문구로 요약된다. 이러한 사상을 토대로 전개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화폐와 가치 이론, 독점과 생산관계,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론 등을 주요 논점으로 삼는다. 이후 루이 알튀세르 등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널리 계승·발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