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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내부의 비판과 분화 흐름 요약

by 브로핏 2025. 9. 8.

 독일 사회민주당의 점진주의와 우경화를 비판하던 로자 룩셈부르크는 기본적으로 레닌의 입장에 공감하면서도,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원리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레닌의 제국주의 해석은 사회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주체적 역할을 약화시키고, 반대로 농민과의 동맹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비판은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뒤 더욱 강력해졌으며, 특히 볼셰비키가 소비에트 러시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소농과 중농의 정치적 영향력에 주목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더 나아가 로자는 레닌이 주장한 전위당 이론과 직업 혁명가 중심의 엘리트주의가 공산주의의 목표로 지켜야 할 민주주의적 원칙을 근본적으로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1920년 이후 볼셰비키가 노동조합을 억압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레닌의 이론이 결국 권위주의적 수단을 내포한 자본주의적 정치 체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로자가 지향한 사회주의는 개별 노조와 노동자 집단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며, 그들의 자율적 참여를 기반으로 한 의회주의적 정치구조로 표현되었다. 레닌 사망 이후 스탈린은 권력 투쟁을 그쳐 좌익 반대파와 통합 반대파를 차례로 제거하고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는 니콜라이 부하린을 당내 '형식적 우파'로 남겨두면서 자신이 정통성을 가진 중심 세력임을 내세웠다. 그러나 1928년 제1차 5개년 경제 개발 계획을 둘러싸고 부하린과 충돌이 격화되자, 결국 그를 숙청하였다. 이어서 1938년 '볼셰비키당사'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 해석을 독점하면서, 새로운 이념적 체계인 '마르크스-레닌주의'가 확립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 전체에 큰 파급을 미쳤다. 특히 1935년 8월 25일 열린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게오르기디미트로프가 제안한 반파쇼인민전선론이 채택되었고,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주요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식민지와 반식민지 지역의 공산주의자들은 이 노선을 따르며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민족주의 세력, 자유주의 세력과 단단한 연대를 형성했다. 이러한 투쟁의 이론적 근거는 코민테른이 제공했다. 동시에 이 시기는 공산주의 체제가 일정한 보편적 윤곽을 갖추던 시기였다. 이때부터 공산주의는 대규모 사회 계획, 계획 경제, 중공업 중심 발전, 토지 및 산업의 전면적 국유화,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당의 독재, 무상 복지, 계급 투쟁을 동반한 종합적 정치 운동이라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원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핵심 요소였으나,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이론적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곧바로 '공산주의 일반의 특징'으로 확산되었다.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트로츠키는 멕시코로 망명하여 스탈린 체제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였다. 그는 스탈린의 독재적 체제가 사회주의를 왜곡·타락시킨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보았으며, 이를 관료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다만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연방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았고, 사회주의적 성격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기형적 노동자 국가' 또는 '타락한 노동자 국가'라는 규정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그는 스탈린이 주도한 인민전선 노선이 스페인 혁명의 실패를 초래했고, 프랑스에서 파시즘의 성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트로츠키의 분석에 따르면 인민전선 전략은 본래 혁명이라는 대의를 위한 연대를 약화시키고, 심각한 분열을 낳았으며, 그 결과 공산주의 세력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중요한 기회들을 스스로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트로츠키가 제시한 독자적인 혁명 이론은 '연속 혁명론'으로 불린다. 이는 특정 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하면 그 혁명을 고립시키지 않고 지속적으로 확대·수출하여, 국제적인 혁명 전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이론은 소비에트 연방 내부에서 스탈린과 경쟁할 당시,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노선으로 인식되었다. 레닌 사후 트로츠키는 스탈린과의 권력 경쟁에서 밀려나 결국 소련에서 추방되었고, 이후 생애 전반을 스탈린주의에 맞서 투쟁하며 보냈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저작 가운데 하나가 바로 '스탈린주의 날조학'이다. 1970년대 초반,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서유럽의 여러 공산당들은 '유로코뮤니즘'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자신들이 소련, 특히 스탈린주의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던 기존의 전통과 선을 긋고자 했다. 이러한 흐름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일본 공산당 역시 유사한 방향을 따랐다. 프랑스 공산당의 경우 1970년대에 프랑스 사회당과의 연대를 통해 7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소련의 붕괴와 그 위성 국가들의 몰락을 계기로 세력이 급격히 위축되었고, 의석수 또한 크게 줄어들며 정치적 위상 역시 하락하였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공산주의를 본질적으로 유토피아적 성격을 지닌 체제로 규정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와 욕망을 무시하고 있으며, 개인의 동기부여가 사라짐으로써 생산성이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에 불행이 만연하게 된다고 한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 또한 공산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공산주의자는 자기 자신의 의지를 사회 전체의 의지와 동일시하는 만큼 완전한 독재자가 된다"라고 주장하여, 공산주의 내부에 존재하는 구조적 모순을 강조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는 공산주의 역시 근대적 세계관의 산물로 간주된다. 특히 공산주의가 제시하는 역사적 단계론은 근대주의적 합리성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산주의는 근대성의 연장선 위에서 등장한 최종적 산물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아나키스트들은 공산주의 이론, 특히 레닌주의적 해석에서 이미 근본적인 오류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마르크스주의 원래의 입장에 따르면 '국가'는 일시적이고 궁극적으로는 소멸해야 할 권위적 장치였으나, 레닌주의는 이를 절대화하고 고정된 권력 구조로 변질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나키즘 진영에서는 공산주의가 국가의 해체를 지향하기보다는 오히려 국가주의를 강화했다고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