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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역사

by 브로핏 2025. 8. 22.

부스라에서 발견된 고대 로마 모자이크는 낙타를 이끌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상인을 묘사하고 있다. 누군가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고 분배한 이래로, 어떤 형태로든 경제는 항상 존재해 왔다. 사회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경제도 발전해 왔다. 수메르는 상품 화폐를 사용하는 대규모 경제 체계를 처음으로 구축했고, 바빌로니아와 주변 도시국가들은 채무, 계약, 재산권 등 경제 활동을 규율하는 법률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이들 고대 국가는 오늘날의 시민 사회와 비슷한 형태의 법과 제도를 갖췄다. 재판소, 감옥, 행정 기록 등 최초의 공식적인 법률 및 행정 시스템을 구축했다. 당시 경제는 대부분 자급자족 농업에 기반했다. '셰켈'이라는 말은 고대 셈족이 사용한 무게 단위이자 통화 단위로,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보리의 일정한 무게를 기준으로 은, 청동, 구리 등과 교환되는 가치를 나타냈다. 이는 영국의 '파운드'가 원래 은 1파운드의 무게에서 유래한 것과 유사하다. 대부분의 거래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시장에서 물물교환을 하는 상인들도 있었다. 'economy'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고대 그리스에서는 많은 이들이 채무노예 상태에 있었다. 당시 경제 논의는 소성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국에서는 비시장 경제를 유지하면서 종신 고용과 법적 보호를 통해 관료제 기회를 보장하는 등의 제도적 혁신이 이루어졌다. 중세 시대에는 대부분의 경제 활동이 자급자족에 머물렀고, 교환도 주로 사회 내부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규모 탐험과 정복을 위해 '벤처(vertura, 위험)' 자본이 등장했으며, 신대륙에서 얻을 자원으로 투자금을 상환하겠다는 약속이 일반적이었다. 마르코 폴로, 콜럼버스, 바스쿠 다 가마의 항해는 세계 최초의 글로벌 경제 형성으로 이어졌다. 초창기 기업은 무역 회사였고, 1513년에는 안트베르펜에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생겼다. 당시 경제는 대부분 무역 중심이었다. 유럽의 식민지는 유럽 국가들의 지부 역할을 했고,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은 관세 정책으로 무역을 통제했다. 중상주의는 공익과 사익을 조율하려는 초기 경제 모델로 등장했다. 세속화가 진행되며 국가는 교회 재산을 도시 발전에 활용했고, 귀족의 힘은 약해졌다. 은행가 로트실트 같은 인물들은 전쟁과 국가 프로젝트에 자금을 제공했다. 이때부터 경제는 '국민 경제' 개념으로 발전했다. 현대 경제학의 시초는 스코틀랜드의 애덤 스미스(1723~1790)로 여겨진다. 그는 국민 경제의 구조를 분석하고, 상품이 경쟁과 분업을 통해 자연 가격으로 거래된다고 보았다. 그는 개인의 이익 추구가 자유 무역의 원동력이라 주장했으며, 이는 경제학의 근간이 되었다.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 과잉 문제에 수요와 공급 개념을 적용했다. 18세기 후반 시작된 산업 혁명은 농업, 제조업, 광업, 교통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영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시기에는 대량생산과 분업 체계가 정착되며 사회 전반이 변화했다. 중상주의가 무너지며 자유 경쟁이 확대되었고, 산업 성장이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경제' 개념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계기로 대중화되었다. 세계대전과 대공황 이후, 정책 입안자들은 시장을 더 잘 통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은 자유 무역을 강조하며 신자유주의 이론을 제시했고, 케인스는 국가가 경제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케인스주의로 불리며, 총수요를 조절해 경기 부양을 도모했다. 195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는 고도성장이 이루어졌고, 독일에서는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릴 정도였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풍요한 사회'에서 대량 소비 사회 개념을 제시했다. 이후 많은 국가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채택했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동유럽 국가들이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로 전환하면서, '탈공업 사회'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떠올랐다. 이는 산업 중심 사에서 벗어나 서비스 산업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 개념의 출처로는 다니엘 벨이 1973년에 발표한 '후기 산업 사회의 도래'를 들기도 하고, 일부는 이반 일리치의 '연희를 위한 도구'를 첫 사용 예로 본다. 이 개념은 또한 1990년대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철학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쇠퇴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2000년~2001년 이후 인터넷이 대중적 미디어와 소통 수단으로 널리 퍼지면서, 전자상거래와 전자비즈니스의 중요성이 커졌고, 그에 따라 인터넷 경제 및 정보경제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와 함께 '글로벌 정보 사회'라는 용어도 생겨났는데, 이는 모든 것이 연결된 새로운 사회 구조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다. 2000년대 후반에는 중국, 브라질, 인도 같은 신흥국들이 기존의 서구 중심 경제 모델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며, 다양한 경제 형태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확대되었다. 경제사는 경제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분야에서는 역사적 분석, 통계적 방법, 그리고 당시의 역사적 맥락에 기반한 경제 이론이 함께 사용된다. 관련된 분야로는 경영사, 사회사, 노동사 등이 있으며, 특히 수치적 변화에 중점을 두는 경우에는 수량경제사라고 불린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일반 역사와 구분된 독립적인 학문으로서 경제사를 연구해 왔다. 프랑스에서는 1920년대 아날 학파의 등장 이후, 경제사 연구가 주요 학문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사는 다양한 이론적 관점에서 해석되며, 그만큼 학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도 크다. 오늘날에도 경제사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계량경제사(또는 수량경제사)는 경제 이론과 함께 계량경제학의 분석 기법을 활용하여 경제사를 연구하는 분야이다. 통계적 데이터와 수학적 모델을 통해 과거 경제 현상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