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란 일정한 시기 동안 특정 국가 내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경제성장률은 실질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의 증가분을 기준으로 측정해 왔다. 여기서 '성장'은 단순한 명목상 수치가 아니라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제거한 실질 생산량의 변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전년도 대비 실질 GDP가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통해 경제성장률, 혹은 GDP 성장률을 계산한다. 경제성장률은 일정 기간동안 한 국가의 국경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경제활동을 기준으로 산출된다. 가계, 기업, 정부 그리고 외국인이 그 국가에서 생산활동을 통해 창출한 부가가치와 최종 생산물을 집계한 뒤, 이를 전년도와 비교해 증가율을 구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외국 기업이 한국 내에서 생산한 소득은 포함되지만,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거둔 소득은 반영되지 않는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국민의 소득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는 '국민총생산(GNP, Gross National Product)'이 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세계화가 심화되고 다국적 기업 활동과 외국인 투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현재는 '국내총생산'이 더 널리 사용된다. GDP는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고려해 산출되며, 특정 영토 안에서 발생한 경제활동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국제 비교나 정책 수립에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원자재 가격, 실업률, 물가상승률이 있다. 자국 내 매장량이 부족하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원자재는 생산 비용에 직접 반영된다. 이는 곧 제품의 판매가격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국제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생산, 소비, 저축, 투자 등 경제활동의 주요 주체인 인력이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일반적으로 실업률이 낮을수록 경제가 건전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가 수준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과 생산원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물가 상승률은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로 평가된다. 서구 사회에서 근대적 자본주의 경제가 움트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이후로, 이는 동양과의 접촉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그 출발점은 십자군 원정이었다. 종교적 성격이 강했던 십자군 전쟁은 동시에 정치·경제적으로 커다란 파급효과를 낳았다. 정치적으로는 봉건 영주들이 통합되어 절대왕정의 기반이 마련되었고, 경제적으로는 폐쇄적 가내 경제가 개방적 교역체제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십자군 원정은 지중해 연안에 새로운 도시들을 성장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 상인들이 군수품과 병력을 수송하면서 동방의 상품을 서구로 대거 유입시켰다. 제노바, 피렌체, 마르세유와 같은 도시들이 이 시기에 크게 발달했고, 이를 거점으로 유럽 각지에 상업 도시가 확산되었다. 중세 후반부로 갈수록 십자군 원정은 종교적 열정보다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중심이 되었고, 동서 교역은 점점 활발해졌다. 이러한 교역은 도시 수공업의 성장과 농촌의 상업화로 이어졌으며, 길드 체제와 지대경제를 낳았다. 결국 이 과정에서 형성된 중산층, 즉 시민계급이 근대 사회의 주체로 성장하였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는 문화적 변혁을 주도했다. 16세기에는 절대왕정과 중상주의 정책이 결합하며 서구 사회의 해외 팽창이 가속화되었다. 바스코 다 가마의 항로 개척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동서 교역의 중심을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시켰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이 해상 강국으로 부상했고, 리스본·앤드워프·런던 등은 세계 무역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중상주의는 시민계급의 경제적 성장을 촉진했고, 이들이 정치적 영향력까지 확대하면서 근대 국민국가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근대 자본주의 발전의 결정적 계기는 산업혁명이었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섬유산업에서 출발해 기계공업, 제철, 제강업, 조선업, 철도업 등으로 확산되었고, 새로운 공업 도시들을 탄생시켰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생산조직의 변화는 자유주의와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 자본주의 문화를 낳았다. 이후 산업혁명은 유럽 전역과 미국으로 전파되며 19세기 전반을 '혁신의 시대'로 만들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제강·화학공업 등 새로운 기술 혁신이 자동차산업과 운송 산업의 발전을 촉발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가 맞이한 새로운 국면은 단순한 기술 발전보다는, 자본주의 성숙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경제적 구조 변화에 있었다. 과잉 경쟁과 이윤율 하락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은 합병과 집중을 통해 규모를 키웠고, 해외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이로 인해 19세기 말부터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주의가 본격화되었고, 이는 20세기의 빈번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사회주의 학자들은 이를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로 규정했으며, 1929년 세계 대공황은 그 위기의 폭발이었다.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는 자유방임주의에서 벗어나 국가의 개입과 조정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뉴딜 정책이 대표적 사례이다. 국가는 독점 자본을 견제하는 동시에 사회 각계의 이해를 조율해야 했고, 해외로는 후진국 개발을 지원하며 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을 유지하려 했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