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 경제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조 중 하나로 꼽힌다. 마르크스는 저서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했으며, 그 사상은 이후 수많은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르크스는 물질적 부의 본질과 그 대상이 어떻게 인식되고 활용되는지를 다루는 폭넓은 철학적 논의 속에서 '상품'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상품은 단순한 자연적 사물과 구분되며, 인간의 노동이 결합될 때 비로소 성립한다. 마르크스는 상품이 이중적 성격, 곧 두 가지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즉,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이다. 사용가치는 어떤 상품이 실제로 소비되거나 사용될 때에만 드러나며, 교환가치는 그것이 시장에서 다른 재화와 교환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잉여가치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고전학파의 노동가치설 및 지대이론과 연결시켰다. 나아가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다이아몬드와 같은 특정 상품을 실제 효용 이상으로 과대평가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구분을 노동 관계에도 적용하였으며, 자본가가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사용가치)보다 적은 임금(교환가치)을 지급함으로써 이익을 취한다고 보았다. 이로써 그는 자본주의를 본질적으로 착취의 체계라고 규정하였다. 애덤 스미스 이후 경제학이 방법론적으로 큰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바로 한계혁명을 거치면서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경제학자들은 물리학적 분석 틀을 차용하여 미적분을 활용한 수학적 모형을 개발하였으며, 일반균형 이론이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기초가 마련된 것도 바로 이 시기 이후이다. 한계혁명에 따르면, 합리적인 경제 주체는 한계 효용이 한계 비용과 같아지는 지점을 선택한다. 이 원리는 현대 경제학에서도 다양한 모형의 결론으로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1870년대를 전후하여 발전하였다. 이때 세 가지 주요 학파가 형성되었다. 첫째, 케임브리지 학파는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1871년 '정치경제학의 이론' 출판)가 대표 인물로 꼽힌다. 둘째, 오스트리아 학파는 카를 멩거,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 프리드리히 폰 비저 등이 주도하여 자본이론을 발전시키고 경제위기 현상을 설명하려 했다. 셋째, 로잔 학파는 레옹 발라스와 빌프레도 파레토를 중심으로 일반균형이론과 파레토 효율 개념을 체계화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경제학은 처음으로 대학에서 독립된 학문 분야로 자리 잡았다. 알프레드 마셜이 1903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경제학과를 창설한 것이 그 시초로 평가된다. 미국 중서부 출신으로 시카고 대학에서 활동했던 소스타인 베블런은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물질주의적 문화와 부를 과시적으로 소비하는 상류층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이러한 '과시적 소비'가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모순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보았다. 1930년대에 이르러 노르웨이의 경제학자 랑나르 안톤 시틸 프리슈(1895-1973)와 네덜란드의 얀 틴베르헌(1903-1994)이 계량경제학의 기틀을 세웠다. 이어 1936년, 러시아계 미국인 학자 바실리 레온티에프(1905-1999)는 선형대수학을 활용해 경제의 투입산출 분석 모형을 제시했으며, 이는 이후 컴퓨터 계산에 최적화된 구조로 평가받아 197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의 근거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로런스 클라인이 컴퓨터를 이용한 계량경제 모델링을 개척하며 이 분야를 더욱 발전시켰다. 존 메이더느 케인스는 마셜의 제자로,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경제를 분석하고 설명하려 했다. 그는 오늘날 사용되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같은 경기 부양 수단의 기본 논리를 마련했으며, 거시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특히 그는 경기 침체기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944년, 존 폰 노이만과 오스카 모겐스턴은 '게임의 이론과 경제행위'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는 게임이론의 효시로 평가된다. 게임이론은 경제 주체들 사이의 전략적 상호작용을 다루는 경제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시카고 학파는 시카고 대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학파로, 미국학파라고 불리기도 하며,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사상의 흐름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은 기존 케인스주의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이를 계기로 신케인스학파가 등장하였다. 신케인스학파의 경제학자들은 임금과 가격이 단기에 경직적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로 인해 시장은 자동적으로 균형을 회복하지 못하며, 따라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기존 케인스의 주장에 새로운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신케인스학파는 거시경제학에서 미시적 기초를 강조하면서도, 경기 변동에 대한 정책적 대응을 정당화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동안 경제학계는 케인스의 거시경제학과 신고전학파의 미시경제학을 절충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이는 신고전파 종합으로 불리며, 폴 새뮤얼슨 등이 주도하였다. 신고전파 종합은 정상 시기에는 시장이 자율적으로 균형을 이루지만, 경기 침체기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 시각은 1970년대까지 경제학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밀턴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발전한 통화주의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설명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화폐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며, 정부가 통화 공급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케인스식 재정정책의 효과를 회의적으로 보았으며, 장기적으로는 통화량이 경제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이라고 보았다.